김수현(여·39·청주시 상당구)씨는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최근 유난히 투정이 심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한달 전부터 아이가 신경질적으로 변하며 구토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담임교사가 ‘아이가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가정통신문을 보내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김씨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다.
아이는 진단결과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김씨는 치료를 위해 의사와 상담하는 과정에서 아들의 일상을 살펴본 뒤 놀라고야 말았다.
아이는 학교가 끝난 뒤 영어학원과 보습학원, 학습지수업, 동화읽기(논술) 과외, 합기도 도장 등을 마쳐야 집에 온다. 귀가시간은 오후 8시께. 숙제를 하고 나면 밤 11시가 넘어야 잠을 잘 수 있다. 평소 아이가 학원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아 김씨는 설마 아이가 교육 때문에 우울증까지 걸릴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김씨는 “맞벌이를 하고 있어 아이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다”며 “어린 나이에 우울증에 걸릴 줄 몰랐다”고 한숨을 지었다.
이처럼 아동, 청소년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받아 우울증이나 여러 가지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특히 일부 부모들의 욕심이나 가족들의 기대가 스트레스로 작용해 정신질환으로 발전하는 연령대도 낮아지는 추세. 끊임없이 이어지는 학원 스케줄에 스트레스를 건강하게 해소할 여력이 없는 것이 이를 더욱 부추긴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전교조 청주초등지회가 최근 청주지역 초등 5~6학년 어린이 1500여명에게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시험을 볼 때 기분에 대한 질문에 ‘엄마한테 점수가 나쁘다고 혼날까봐 걱정된다’(27%)거나 ‘잘 봐야 할 것 같아 스트레스를 받는다’(26%)라는 답변이 절반 이상이었다.
현재 학생들이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해서도 절반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답해 상당수 어린이가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분석 자료에서도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19세 이하 환자는 지난 2003년 2만6409명에서 2004년 2만8611명, 2005년 3만2829명, 2006년 3만7664명, 2007년 4만5922명으로 매년 늘었다. 이 가운데 우울증 환자가 2003년 1만8527명, 2004년 2만274명, 2005년 2만2717명, 2006년 2만4613명, 2007년 2만8420명 등이다.
청주 성모병원 이재영 소아정신과장은 “계속된 학원 스케줄을 가진 아이들은 부모들과 시간을 그만큼 덜 가진다”며 “결과적으로 부모와의 정신적인 유대감이 떨어져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부모와의 정서적인 유대감이 필요한 나이의 아이들이 지나친 교육으로 인해 스트레스가 생기고, 이것이 우울증 등 정신적인 문제로 발전한다는 것.
우울증을 가진 아이들은 스스로 우울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해 표현하지 않고, 오히려 ‘싫다’, ‘힘들다’로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부모가 아이가 평소와 다르게 행동하거나 감정기복이 심하면 그냥 넘어가지 말고 아이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를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과장은 “스트레스는 우울증이나 이상행동을 보이거나 구토, 두통 등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난다”며 “스트레스가 계속되면 청소년기에 정신·신체적인 증상으로 표출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아이는 직접적으로 부모에게 ‘학원 안 나간다’같은 말을 하지 않는다”며 “아이의 말보다 드러내는 행동으로 아이의 힘든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소아 우울증이 여러 문제를 일으키고 만성화될 가능성도 높지만 조기에 발견해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충분히 완치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청소년의 경우는 소아·초등학생보다 치료가 더 힘들기 때문에 발견 조기에 상담·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
소아정신과 병원 등에는 약식의 자가 진단법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가 의심될 때는 인터넷 홈페이지나 전화통화를 통해 간단한 자가 진단법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