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거친 기준을 가지고 산다. 아무리 욕을 먹어도 그쯤이야 가볍게 무시한다. 수천 억 원의 비리가 밝혀져도, 수백 명의 생명이 희생되어도 누구 표현대로 '의연하게 대처'하기 때문에 지장 없이 잘 먹고 잘 산다.
섬세한 사람들은 다르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상처를 받기 때문에, 남들로부터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하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다. 거친 사람들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일도 섬세한 이들한테는 심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살기를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보통 섬세한 사람들은 '약한 사람'과 같은 의미로 오해 받는다.
우리가 거칠어지는 순간은 언제일까? 화가 치밀어 오르고 상대방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는 순간이 떠오른다. 언제 비단같이 섬세한 마음의 결을 느끼게 될까? 사랑할 때가 아닐까. 사랑의 충만한 감정, 사랑하는 이가 보내는 미세한 사인들에 온몸의 촉각이 곤두서는 느낌, 말해지지 않는 모든 것을 파악하고자 하는 안간힘…. 그런 것이 섬세함일 것이다.
인간 사회가 경쟁과 승패 속에서 건설되고 또 파괴되는 경험을 반복했다면 이제 세상은 작아지고 세밀해졌으며, 섬세함을 추구한다. 섬세한 것은, 부드러우며 미세하게 존재하는 것들을 무시하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맵고 짠 맛,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져 있는 사람은 부드러운 맛의 다양한 층위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인생의 풍부함은 미세한 차이를 느끼는 섬세한 감각에 있는 게 아닐까. 누군가가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목표(Goal)인가, 과정(Process)인가를 묻는다면 당신은 무엇이라 대답하겠는가?
짧은 시기에 압축적인 성장을 이룬 현대사의 경험 때문인지 우리는 성취를 곧 성공적인 삶으로 동일시해 왔다. 성취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듯이 살지만, 그렇다면 인생이 경주와 다른 게 무엇이겠는가? 목표 달성을 중심으로 인생을 보는 것은 확실히 거친 시각이다. 경주할 때 섬세함은 거추장스럽다. 또 세상의 교육은 얼마나 가혹한 것인지, 우리는 당위성 앞에 모두 무릎을 꿇고 옳고 그름을 확실히 구분하여 옳음 속에 자신을 위치시키고자 가여운 노력을 계속한다.
아이들 중에도, 어른들 중에도 유난히 섬세한 사람들이 있다. 거친 사람들은 그들에게 말한다. "그렇게 바보 같이 굴지 말고 똑바로 해!", "넌 너무 수줍어서 탈이야!", "그 정도 가지고 그렇게 좌절하다니, 너무 약해 빠졌어." 등등. 이런 말들은 섬세한 촉수들을 더 오그라들게 만들고, 자기가 문제 있으며, 세상으로부터 크게 비난 받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여린 것은 약점이 아니라 섬세함이란 강점이 될 수 있다. 작은 차이를 느끼는 예민함,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남과 연결되는 부드러움, 결국 형성되는 자기만의 목소리. 이런 것들은 얼마나 귀중한가? 세상으로부터 쉽게 상처받는 여린 영혼의 소유자들을 위해, 부모가 남들과 같아지라고 제발 윽박지르지 말기를, 세상이 좀더 개인을 배려하는 섬세함을 가지기를 바란다.
경쟁적인 사회생활에서 우리는 '센 척'해보고, '똑똑한 척'해보지만 결국 그 모든 '척하기'는 공격 당할까 미리 취하는 방어에 불과한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다. 거친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을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