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미야,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구슬에 실을 끼워 봐. 이렇게 해서 목걸이를 만들어 봐." 아까부터 유미가 혼자 노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던 엄마가 답답한 듯 말한다. 엄마가 목걸이를 만드는 것을 잠시 보고 있던 유미가 말한다. "싫어, 나 목걸이 싫어, 안 만들래." 유미는 돌아앉아서 다시 장난감 주전자에 주스를 따르는 시늉을 한다. "아니, 넌 아까부터 주스만 따르고 있잖아. 목걸이 싫으면, 이거 봐, 그럼 블록으로 집을 만들까? 여기 블록이 모두 몇 개지? 하나, 둘, 셋, 넷…."
28개월 된 유미는 엄마의 질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난감 주전자를 들고 장난감 컵에 물을 따르고 마시는 시늉을 되풀이하고 있다. 유미 엄마는 유미가 별 생각 없이 컵에 물 따르는 시늉만 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유능한 엄마라면 아이가 할 일없이 놀고 있을 때 적극적으로 끼어들어서 뭐라도 가르쳐야 될 텐데. 유미가 거들떠보지도 않으니 낙심천만이다.
유미 엄마처럼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가 놀고 있는 동안에도 뭐라도 하나 더 가르치려고 노력한다. 물론 아이가 노는 동안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단어나 수를 가르칠 수는 있지만 문제는 아이의 놀이를 방해하며 가르치려고 들 때다. 유미는 지금 한창 장난감 주전자를 가지고 소꿉놀이에 빠져 있는데 엄마는 생뚱맞게 수를 가르친다. 뭔가를 가르치려는 의욕이 앞서는 엄마는 유미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아이는 곧 놀이에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운다. 유미는 장난감 주전자로 주스를 따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주스를 상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주스이지만 흘릴 수도 있고 바닥이 다 젖을 수도 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들을 마치 보이거나 존재하는 것처럼 가장하는 상상의 놀이는 18개월이 지나야 발달하는 것으로 언어의 발달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중요한 활동이다. 유미는 지금 이러한 활동을 통해 인지발달의 한 과정을 스스로 실험하고 있는데 엄마가 자꾸 유미의 놀이를 방해하고 있다.
이렇듯 어른들의 눈에는 별 생각 없는 것처럼 보이는 단순한 놀이 활동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진지한 실험이자 학습의 기회다. 특히 놀이는 실패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스트레스 제로의 게임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마음껏 놀이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어른들이 개입해 놀이의 방법이나 활동의 방법을 가르치려 들고, 잘 못한다고 아이를 구박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긴다. 아이들은 그 순간 활동 그 자체보다 어른들의 평가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하고 스트레스가 생기기 시작한다.
아이들의 놀이를 진정한 맞춤식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려면 먼저 아이의 놀이를 관찰하라. 때로는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아이의 놀이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어른들은 놀면서도 뭐든지 배워야 비로소 마음이 흡족하지만 아이들 수준에 맞지 않는 것을 가르치려고 드는 순간 아이의 놀이 학습은 끝날 수 있다.
유미 엄마처럼 만약 아이에게 수 세기를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먼저 아이의 놀이를 관찰한 뒤 아이의 놀이 속에서 가르치기를 시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미와 함께 장난감 컵에 물을 따를 때, "친구 두 명이 왔어요. 주스를 두 잔 주세요"라고 얘기하며 자연스럽게 수 세기를 시도할 수도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