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닉 칼럼

돈ㆍ성공이 최고인 부모의 분신 `스포일드 키드`--매일경제

#사례 1. " 선생님이 날 때려? 못참아! "
지난 5월 한 초등학생이 자신을 꾸짖는 여교사를 폭행한 사건이 뉴스에 오르내렸다. 해당 교사는 입 주위가 찢어져 여섯 바늘을 꿰맸고, 정신적 충격으로 한동안 출근을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이런 아이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경제적으로는 과거보다 몇십 배 풍요로워졌지만 풍요의 과실을 따 먹고 자란 아이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나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스포일드 키드(Spoiled Kid)'로 자라고 있다.

스포일드 키드들이 사건이 저지를 때마다 '충격적'이라고 말하지만 별다른 대책 없이 방치하고 있다.

#사례 2. " 싸구려 과자는 입에 안맞지"
최근 서울 강북권에 살다가 강남으로 이사 온 30대 주부 박 모씨(34)는 성당에 다녀온 초등학교 아이들이 성당에서 수녀님들이 나눠준 간식을 길에 버리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박씨는 모른 척 지나갈까 했지만 아이들을 붙잡고 왜 뜯지도 않은 간식을 버리느냐고 물었다.

아이들은 "저런 싸구려 과자는 입맛에도 안 맞고 몸에도 안 좋아서 먹기 싫다"고 대답하고 지나가 버렸다.

박씨는 '내 아이는 저렇게 키우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등골이 서늘해졌다고 토로했다.
'스포일드 키드(Spoiled Kid)'.
문자 그대로는 '버릇없는 아이' '응석받이' 정도다. 하지만 스포일드 키드의 범위는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버릇없거나 예의 없는 수준이 아니라 범죄와 폭력으로까지 연결돼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그러나 이를 적극적으로 교화해야 하는 가정과 학교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면서 스포일드 키드는 자신도 모르게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갓 부임한 김 모 교사(29)는 이런 스포일드 키드의 무서움을 체험하고 있다.

김씨는 수업시간 내내 책상에 엎드려 자는 학생을 며칠간 지켜보다가 결국 심하게 나무랐다. 그러나 이 학생은 갑자기 돌변하면서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하는 주제에 뭔 훈계냐"며 욕을 하며 대들었다.

김씨는 "나 자신이 학교 다닐 때 학교 수업시간에 자고, 학원 가서 공부했던 경험이 있는 세대지만 최소한 선생님을 면전에 두고 욕하고 때리려 하진 않았다"며 "아이들한테 맞는 선생님들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극소수에 해당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내 이야기가 된 것 같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주변 선생님들의 반응은 '그러려니 하고 넘기지 않으면 너만 힘들다'는 것이었다.
학교 밖에서도 제멋대로 행동하는 스포일드 키드의 모습은 이미 만연해 있다.
학원강사들은 이제 학생들의 욕설이 낯설지도 않고, 아무런 느낌도 없다고 했다.
보습학원 강사인 한 모씨(37)는 "처음 학원강사를 할 때 학생들이 면전에 대고 욕할 때는 화도 나고 해서 나무라도 보고 혼내기도 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내 귀한 자식 왜 나무라느냐'는 부모들의 항의 전화와 '학생들 그만두면 당신이 책임질 거냐'고 따지는 원장의 잔소리뿐"이라고 말했다.

지하철이나 버스와 같은 공공시설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인과 함께 밤늦은 시간 지하철을 탔다가 '대머리가 가발 쓰고 아닌 척한다'며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던 남자 중학생을 나무라다 화를 참지 못하고 한 대 때렸던 임 모씨(58)는 "결국 경찰서까지 가서 도리어 학생 부모에게 선처를 호소해야 했다"고 전했다.

임씨는 "예전에는 길거리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다 내 아이라는 생각으로 잘못된 것을 보면 나무라고 꾸짖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며 "이제는 그냥 조용히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 밖에도 식당에서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거나 남의 발을 밟거나 부딪쳐도 '왜 시비 거냐'고 도리어 노려보는 아이 등 스포일드 키드는 약한 수준에서부터 아무에게나 폭력을 휘두르는 범죄 수준까지 폭넓게 사회에 자리잡았다.

모 기업 회장은 "요즘은 영화를 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조폭에 욕설뿐이고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욕설이 아니면 대화가 안 되는 수준"이라면서 "20대부터 60대까지 온통 돈 벌 궁리만 하는 데다 방송이며 신문이며 돈 많이 번 사람들을 영웅시하는 등 애들한테 물질만능, 배금주의만 가르치는 사회 풍조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스포일드 키드는 6ㆍ25전쟁 전후 세대가 일단 첫 번째 스포일드 키드를 양산했고, 1990년대에서 외환위기를 겪고 2000년대로 넘어가면서 2차 스포일드 키드를 키우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6ㆍ25전쟁을 겪은 전후세대는 부모로부터 잘 얻어먹지 못하고 여러 형제들 틈바구니에 끼어서 제대로 된 사랑이나 관심을 받지 못한 이들.

이 같은 전후세대는 자녀의 학업에는 엄격하면서 자식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아이는 그렇게 키우지 않은 희생형 부모의 전형이다.

전후세대의 극진한 보살핌과 자기희생적 양육 속에 자란 자녀들이 바로 버릇이 없고 게으르며 이기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1990년대의 10대, 즉 X세대였다.

하지만 이 같은 X세대는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2차 스포일드 키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스포일드된 편.

외환위기 이후 나타난 2차 스포일드 키드는 선천적으로 물질적인 풍요로움에 익숙하고 소위 '기죽는 것'을 못 참는 부모 밑에서 컸다는 게 특징. '사랑의 매'라는 개념에 대해 아예 이해나 경험을 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이들은 인터넷과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세대로 폭력과 욕설, 저질문화에 그대로 노출됐다.

주은선 덕성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 양육에 있어서는 한계 설정(Boundary Setting)이 제일 중요하다. 어려서부터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은 허용되지 않는가를 잘 가르쳐야 하는데 요즘 부모들은 아이가 예쁘고 귀하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허용하는 게 문제"라고 분석했다.

주 교수는 "한계를 명확하게 정해주지 않음으로써 아이로 하여금 모든 것이 허용됐다는 인식을 갖게 하고 이것이 가정 바깥에서도 다 적용된다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면서 "이 같은 방식은 교육이 아니라 사실상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학 전문 사이트인 메디슨넷의 바튼 슈밋 박사가 "부모의 지나친 자식 사랑과 아이들을 위하는 마음이 도리어 아이들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스티븐 아델세임 뉴멕시코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을 오히려 다양한 외부 환경에 자연스럽게 노출시켜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갖가지 문제에 부딪히고 이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스포일드키드로 만들지 않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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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08-07-23

조회수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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