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닉 칼럼

출근 때마다 숨넘어가듯 매달린다… 우리 아이가 설마 분리장애?

"엄마, 회사 가지마…

컨설팅업체에 다니는 김모(35·경기 고양시)씨와 증권사에 다니는 남편 노모(37)씨는 매일 야근이다. 6살 난 딸은 어쩔 수 없이 시골 할머니 댁에 맡겨 놓고, 한 달에 한두 번 내려간다. 그러던 김씨 부부한테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 딸이 할머니와 떨어지면 숨넘어갈 듯 울고 처음 보는 사람 아무한테나 심하게 매달리고 떼쓰는 일이 반복돼 병원에 데려갔더니, 대인 관계와 정서적 행동이 비정상적으로 나타나는 '반응성애착장애' 진단을 받은 것. 의사는 "부모 사랑을 못 받고, 몸이 아픈 할머니도 아이를 거의 돌보지 못해서 생긴 증상"이라고 말했다. 아이를 남의 손에 키우는 맞벌이 부부는 누구나 자녀에게 정서장애가 생길까봐 걱정한다.

 

기르는 사람과 아이 사이에 신뢰 형성돼야

 

영유아기 정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애착'이다.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애착은 아이가 길러주는 사람을 신뢰하는 관계를 말한다. 양육자가 아이를 집안에만 두고 밖에 데리고 나가지 않거나, 아이의 요구를 무시하는 등 무성의하게 키우면 안정적인 애착 관계가 이뤄지지 않는다. 이런 아이는 반응성애착장애나 아동우울증, 분리불안장애 등 정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외부에서 고용한 보모가 아이를 제대로 키우지 않는 경우 이런 문제가 생긴다.

 

반응성애착장애의 증상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처음 보는 사람을 포함해 아무에게나 들러붙거나, 자신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외면한다. 우울증 아동은 예민하고 작은 일에 짜증을 잘 내며, 양육자를 때리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보인다. 분리불안장애는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거나 출근하는 부모에게 매달리는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혜련 연세밝은맘정신과 원장은 "이런 아동은 일반적인 놀이치료보다 언어·놀이·감각·운동 등 아동에게 다방면으로 자극을 주는 통합치료를 1년 이상 받는 것이 좋다. 일찍 치료할수록 좋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 7세 이전 어린이는 기르는 사람과 애착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분리불안장애 등 여러가지 심리 장애를 겪을 수 있다.

무조건 '오냐오냐'해도 정서장애 생겨

 

거꾸로, '과잉 애정'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가까운 친척이 측은지심으로 아이를 기를 때 일어날 수 있다. 김재원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할머니 등 친척이 기르면 아이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건전한 애착 관계가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 응석과 떼가 점점 늘어서 나중에는 폭력적 태도까지 나타난다"고 말했다. 애착의 요건은 아이의 요구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몸짓과 언어로 적절하게 반응해주는 것이므로, 아이에게 "안된다"고 해서 애착이 형성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녀와 길러주는 사람 사이에 애착이 형성되도 맞벌이 부모에게는 여전히 문제의 소지가 남는다. 자녀가 청소년이 된 뒤 부모의 존재를 부정하고 반항하는 등 남의 손에 기른 후유증을 경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김재원 교수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놀아주면서 애착을 쌓는 것 외에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최소 1주일에 1번이라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부모가 편한 시간에 들쑥날쑥 놀자고 하면 아이가 혼란을 겪으므로, 일정한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보모가 해주기 힘든 놀이공원이나 동물원 구경 등으로 부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기를 맡아 기르는 친척이나 보모는 부모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자주 해줘야 한다.

 

부모가 아이를 넘겨받을 때는 이행 기간 둬야

 

양육자가 자주 바뀌면 아이는 새로운 애착 상대에 매번 적응하느라 불안감을 느끼게 되므로 최소 생후 36개월까지는 친척이든 보모든 한명이 기르는 게 바람직하다. 나중에 부모가 아이를 넘겨받을 때는 이행 기간을 가져야 한다. 정유숙 교수는 "아이는 애착을 형성한 상대와 갑자기 떨어지면 소리을 지르고 울음을 터뜨리거나 잠을 못 자는 등 불안 증상을 보인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방치하면 아이 상황은 계속 나빠진다. 이행 기간에는 친척이나 보모가 6개월 정도 같이 살거나, 최소 반나절이라도 아동과 함께 있어 주는 것이 좋다. 동시에 이전 양육자는 아이가 부모에게 자연스레 기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와 아이와 함께 있다가 슬그머니 자리를 떠나되, 처음에는 문밖에서 1분만 떨어져 있다가 돌아오고 차츰 멀리 가면서 떨어져 있는 시간도 늘리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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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관리자

등록일2010-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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