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촉각은 영·유아기에 특별히 중요한 감각이다. 태어난 후 제일 먼저 접하는 감각이어서 가장 빠르게 발달한다. 심지어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후 3주밖에 되지 않은 배아에서도 부분적으로 촉각 반응이 관찰된다. 아기는 시각·청각보다 촉각으로 세상을 알아간다. 영·유아에게 다양한 촉각 자극을 줄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전반적인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중앙일보는 '세살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미래 국가 동량이 될 아이들의 태아부터 출산·육아·교육에 이르기까지 부모·사회가 인지해야 할 '보살핌'의 지혜를 연재한다. 이번 주제는 '뇌는 따뜻한 접촉을 원한다'다.
아기가 우는 이유, 스킨십 원하기 때문
아기는 가능한 한 촉각이 많이 자극되기를 원한다. 그 때문에 본능적으로 촉각 자극을 유도하는 행동을 끊임없이 한다. 대표적인 게 울음이다. 영국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유아의 울음을 보호자에게 스킨십을 유도하기 위한 도구로 정의했다. 아기가 울면 부모는 아기의 상태를 살펴야 하고, 자연스럽게 스킨십이 따른다. 우는 이유가 위급한 상황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스킨십에 대한 본능적인 욕구에 따른 것인 경우도 많다.
스킨십의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뇌의 체성감각피질에 있는 체성감각 지도를 정상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체성감각피질은 신체의 촉각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뇌의 특정 영역이다. 생애 초기에 어떤 촉각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발달의 질이 결정된다.
충분한 촉각 경험은 촉각의 민감도를 발달시키고, 정상적인 신체 감각지도를 형성하게 돕는다. 육체 발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이 같은 결과는 쥐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신체 접촉 없이 방치해둔 새끼 쥐보다 매일 일정시간 만져준 쥐가 더 건강하고 체중도 많이 나갔다. 뇌 중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퇴행성 변화도 더 적었고, 정서적으로 더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생후 10일 이내의 신체 접촉이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촉각 자극이 뇌의 전반적인 발달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리즈 엘리엇이 장난감이 없는 쥐와, 같은 종류의 장난감만 제공된 쥐, 2주에 한 번씩 장난감 종류를 바꿔준 쥐를 관찰했다. 그 결과 2주에 한 번씩 장난감을 바꿔준 쥐의 대뇌피질(주름이 있는 뇌의 표피) 바깥쪽이 가장 많이 발달했다.
부모가 포옹해주면 스트레스 줄어들어
촉각 자극은 아기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따뜻한 스킨십이 아기를 편안하게 안정시켜 스트레스와 스트레스호르몬 분비를 줄여 면역력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부모도 스킨십이 아기와의 애착관계를 형성하는 데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듯하다. 부모가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아기를 안을 땐 자연스럽게 왼손으로 안는다.
아기는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엄마의 심장박동 소리에 안정을 찾는다. 이 같은 영향은 세상 밖으로 나와서도 한동안 지속된다. 많은 부모가 아기를 왼손으로 안는 것은 아기의 귀를 심장에 가깝게 해서 심리를 안정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들이 많다.
아기를 포옹하고, 등을 두드리는 행동도 마찬가지다. 동물학자는 이 같은 행동을 의미동작이라고 한다. 동물집단에서 의미동작은 다른 개체에 자신의 행위에 대한 메시지가 본능적으로 전달되는 동작을 말한다.
어머니가 아기를 반복해 두드리면서 아기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엄마가 너를 껴안아 위험에서 지켜주고 있으니 염려 말고 쉬어라. 지금은 아무 위험도 없단다'이다. 이 메시지는 아기를 편안하고 온순하게 만든다.
유아기엔 지능보다 정서발달 중요
스킨십의 기회를 박탈당한 아기는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질 공산이 크다. 미국의 행동심리학자인 해리 할로 박사의 새끼 원숭이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새끼 원숭이는 원숭이 무리와 같은 방을 쓰며 다른 원숭이를 볼 수도 있고, 냄새도 맡을 수 있었다.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직접적인 신체 접촉은 차단시켰다. 그 결과 원숭이는 극히 불안정한 정서를 감추지 못해 '감정 파산'에 이르렀다.
우리 아기에게도 생존에 필수적인 영양공급·위생적인 환경을 제외하면 심신발달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부모와의 건강한 애착관계 형성일 것이다.
애착관계는 적절한 스킨십을 통한 충분한 교감으로 이뤄진다. 특히 생후 첫 몇 개월이 중요하다. 이때 신체접촉을 소홀히 하면 아기에게 평생의 문제를 남길 수 있다. 아기의 정상적인 성장을 위해서 적어도 이때만큼은 부모나 가족들이 항상 붙어 살을 맞대고, 업어주고, 만져줘야 한다.
인간에게는 각각의 성장기마다 중요한 게 있기 마련이다. 적어도 유아기에는 지능 발달보다 정서 발달이 훨씬 중요하다. 관심이 높은 조기 교육은 우선 정서가 충분히 발달한 뒤에 신경을 써도 크게 늦지 않다.
영·유아기에 필요한 것은 한 글자라도 더 배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의 스킨십을 통해 충분히 교감해서 친밀한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부모 등 양육자는 아기의 스킨십 욕구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세밀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