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인 승현이(가명·10)는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은따(은근한 따돌림)'가 됐다. 승현이는 술래잡기놀이를 할 때마다 술래에게 잡히면 지나칠 정도로 자존심 상해하며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 친구들은 어울릴 때마다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승현이와 함께 놀아 주지 않았다. 승현이는 영어 단어 맞히기 게임을 하다가도 답을 모르면 게임판을 뒤엎고 폭력적으로 행동해 선생님을 놀라게 했다. 혼자 있을 때는 얌전하고 평범하게 행동하다가도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발작 증세가 나타난다. 그래서 친구들은 승현이를 '시한폭탄'이라고 부른다.
초등학교 4학년인 건일이(가명·11)는 학교에서 '천체물리학 박사'로 통한다. 허블망원경으로 찍은 우주 사진을 갖고 다니며 블랙홀이나 은하수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한다. 아이들이 빅뱅이나 소녀시대 같은 아이돌 그룹 이야기를 할 때도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 맥을 끊는다. 이 때문에 건일이가 입을 열면 친구들은 "쟤, 또 시작이야"라며 자리를 피한다. 건일이는 학교 성적이 반에서 상위권에 든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건일이는 최근 엄마에게 "친구들이 왜 나를 피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승현이와 건일이 부모는 아이의 이런 증세를 보다 못해 병원에 데리고 갔다. '자폐스펙트럼장애(ASD)'라는 진단을 받았다. 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조수철 교수는 "ASD는 언어 발달이 매우 늦고 사회성이 심하게 떨어지는 자폐증 환자와 이 두 가지 능력이 약간 떨어지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병"이라고 말했다.
ASD 장애 아동의 증상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이 떨어진다. 다른 사람의 눈을 잘 쳐다보지 않고, 집단의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말할 때 얼굴 표정이 거의 없는 아이도 있다.
둘째,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다. 대화를 어떻게 계속 이어 나가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대화 내용을 그대로 이해해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인다. 셋째, 관심 분야가 제한되거나 반복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천체물리학이나 자동차 등 오로지 특정한 주제에만 몰입한다. 흥분하거나 화가 나면 손을 흔든다.
국내 ASD 환자는 인구의 1% 남짓인 것으로 분석됐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ASD로 치료를 받은 7~12세 아동은 3603명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ASD를 겪는 아동이 이보다 많다고 추산한다. 예일대 정신과 김영신 교수와 루돌프어린이사회성발달연구소 고윤주 소장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일산 지역 초등학교 학생 5만5266명을 대상으로 ASD 조사를 실시했다. 김 교수는 "그 결과 ASD 아동은 2.64% 였다"고 말했다.
문제는 ASD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아이가 산만하거나 쑥스러움을 타 그러려니 하고 그냥 지나치는 부모가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원인도 모른 채 왕따를 당하거나 우울증에 빠지는 아동이 많다. 다른 장애로 오인하기도 한다.
ASD 학생인 중1 동준이(가명·14)도 초등학교 6년 동안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인 줄 알았다. 주의력을 높이는 ADHD 약을 먹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 소장은 "ASD를 ADHD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다"며 "ADHD 약을 장기간 먹으면 식욕 부진·성장 지연·불면증 같은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정신과적 장애를 겪는 경우도 많다. 조 교수는 "우울증·조울증·불안장애·강박장애 등이 생길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강박증상이 심해져 틱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 때문에 ASD는 조기 치료가 중요하다. 분당서울대병원 소아정신과 유희정 교수는 "장애가 의심되면 일단 소아정신과를 찾아야 한다. 확진을 받으면 사회성을 높이는 발달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언어치료·사회성증진치료·행동치료를 병행한다"고 말했다. 촉각이나 감각으로 특징화된 감각통합치료나 동물보조치료도 받는다. 자해나 충동적 행동이 심하면 행동조절을 위해 약물치료가 필요하다.